첫 판 내주고 무릎 꿇은 ‘씨름’. 모래알 털고 다시 샅바 잡다

  

2012년 씨름진흥법 시행 후 본격적 연구 박차… 제2의 전성기 오나



조선후기 풍속화로 우리를 주목시킨 화가 김홍도.그의 작품 중 가장 흥미로운 그림을 꼽자면? 중‧고등학생 시절 미술교과서에서 한 번 쯤은 봤을만한 작품이 언뜻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가. 그렇다. 바로 김홍도 단원풍속도첩 내 ‘씨름’이라는 이름의 수묵채색화가 그 것이다.

이 그림은 18세기 영(英)‧정조(正祖) 때 시대 영향에 따라 문물(文物)이 한국화로 진행되고 서민의 사회적 지위가 새로이 발전돼 회화사가 서민사회에 안목을 두게 되면서 나온 소산물이다. 바꿔 말하자면 당시 화가 김홍도 눈에 비친 서민사회 대표적 모습 중 하나가 바로 이 ‘씨름’ 문화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 씨름도 그림처럼 여전히 서민 곁에 함께하고 있는 걸까. 안타깝지만 아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명절이면 어김없이 프로씨름 경기가 TV 어느 곳을 틀어도 눈앞에 펼쳐지곤 했다.

그러나 90년대 IMF 이후 프로팀 해체, 그리고 2006년을 기점으로 한 대회개최 중단으로 그 빈도가 눈에 띄게 줄었다. 여러 대외적 요소가 한 몫 했지만 소홀한 관리경영이 결정적이었다.

몇 년 전까지 씨름은 발전은 고사하고 경영부재로 인한 프로 팀 해체 등 각종 악재를 맞았다. 그리고 점차 우리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동안 외국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만 적극적이었던 국내 스포츠인은 정작 우리 것을 지키는 데는 실패했다는 뼈아픈 사실을 인지해야만 했다.

그러나 이렇게 넋 놓고 앉아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 넘어진 ‘씨름’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이 이어졌다.

2012년 공포된 ‘씨름진흥법’이 그 단적인 예. 2012년 1월 17일 ‘씨름’이라는 전통문화의 지속적인 보존을 포함한 진흥계획이 ‘씨름진흥법’이라는 이름아래 공포된 후 활발한 시행을 돕기 위한 대통령령의 시행령이 같은 해 4월 18일에 본격 진행됐다. 매년 단오(5월 5일)를 ‘씨름의 날’로 제정하고, 국가 및 지자체의 직접적 지원을 골자로 하는 법률이 제정 된 것.

법안 내용에는 씨름 용어에 대한 기본적 정의와 함께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를 강조하며 진흥기본계획 수립과 시행이 소개됐다. 진흥기본계획은 기본방향, 씨름단체의 지원에 관한 사항, 재원 확보에 관한 사항 등 진흥을 위한 계획부터 수립달성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포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울러 작년 9월에는 ‘씨름’을 유네스코(UNESCO)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본격적 노력이 이뤄졌다. 대한씨름협회(회장 박승한)가 ‘씨름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방안’이라는 제목의 1차 포럼을 국회의원 회관에서 개최한 것.

포럼은 첫째 씨름이 걸어온 길, 둘째 씨름의 무형유산으로서의 가치 및 등재절차, 셋째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의 동향과 씨름의 과제 등을 주요내용으로 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될 경우 씨름과 유사한 다른 무예들보다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될 뿐만 아니라 세계화에 큰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다른 무엇보다 씨름문화 진흥에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 자명하기에 관련 씨름인들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최근에는 이와 관련해 씨름기본계획 연구가 용인대 산학협력단 14인을 중심으로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씨름협회는 오는 7월까지 책임연구원인 용인대 동양무예학과 신승윤 교수, 공성배, 이태현, 김보겸(이상 용인대 교수), 김태완, 박상현(이상 스포츠개발원 연구원), 허용(씨름연수원) 등 선수출신과 교수‧박사진을 중심으로 ‘행복한 씨름, 세계를 들다’는 비전 아래 연구가 진행된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크게 씨름진흥토대구축, 씨름전승보존, 씨름저변확대 및 활성화, 씨름진흥을 위한 제도개선, 씨름세계화실행방안과 같은 5대 영역으로 구성됐다. 현재는 사례를 통한 현황분석단계에 있다고 전해졌다. 씨름의 무형유산가치 재발견을 통해 세계화에 일조하겠다는 방침으로 해석할 수 있다.

수많은 침체와 조직해체기를 거쳐 온 씨름이지만 2012년 씨름계 많은 사람들의 공감에 힘입은 ‘씨름진흥법’이 현재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록을 통한 세계화 시도까지 모색한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여타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다른 무예나 스포츠의 생사는 종류나 종목 그 자체가 아닌 이를 즐기는 ‘우리들의 관심’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새삼 더 분명하게 다가오는 것은 씨름에서도 보았듯이 그것이 진실에 가깝기 때문이 아닐까.

아쉽게 첫 판을 내주고 무릎 꿇은 ‘씨름’. 두 번째 판을 앞둔 지금 다시 심호흡을 가다듬으며 허벅지에 뭍은 모래알들을 훌훌 털어내고 있다. 통쾌한 두 번째 판 승리를 위해 샅바를 움켜쥐는 씨름을 향해 우리는 힘찬 박수를 보낸다.

[무카스미디어 = 정길수 수습기자 ㅣ press01@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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