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튼소리] 우리는 얼마나 많은 헛수고를 반복하는가?

  

공권유술 강준 사범의 허튼소리 63


친구들과의 약속시간이 벌써 30분이나 지났다.
우리가 자주 갔었던 영등포의 카페에서 녀석들은 술도 없이 나를 안주 삼아 씹고 있겠지? 집에서 조금 일찍 나선다고 했는데도 막히는 교통체증에는 방법이 없었다.

이놈들이 돌아가며 전화를 건다.
“애들 다 기다리고 있는데 도대체 언제 오는겨?”

“이놈아! 앞차가 가야 뒤차가 가지!”
조금 기다려 달라는 양해의 말보다 짜증스런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하얀색 소나타가 나의 앞을 얼쩡거리는데 이건 달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주차를 하려고 서성거리는 것도 아니다.

무슨 놈의 앞차 간격을 경부고속도로 110km로 달리는 간격보다 넓게 잡고 있다. 그 사이로 다른 차들이 미끄러지듯이 비집고 들어온다. 뭔가 나의 시간을 손해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조급해졌다.

클랙슨을 울려도 도대체 차안에서 무슨 짓을 하는지 요지부동(搖之不動)으로 “나는 나의 갈길 만을 가련다.”
스타일이다.
여러 번 앞지르기를 시도했지만 좌측편의 차들이 바짝 붙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런, 끼워들 틈이 없네...”
몇 번을 시도한 끝에 앞지르기를 시도하며 슬쩍 운전자의 얼굴을 쳐다보는데...
웬 걸? 아주머니는 운전을 하는 둥 마는 둥 조수석의 학생에게 눈을 돌려 손까지 흔들며 열변을 토한다. 아무래도 아들처럼 보였다.

연설을 하시려거든 국회에서 기조연설(基調演說)이라도 하시지 차량소통을 방해해서야 되겠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달리다 보니 속도계의 바늘은 시속 40km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차가 좀 빠지나 싶었는데 신호등에 걸렸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잠그고 허리를 뒤로 젖히며 우측 창문을 바라보니 하얀색 소나타가 느릿느릿 서서히 들어오며 섰다.

어랏? 아까 나의 앞을 가로막고 짜증스럽게 운전했던 아주머니는 아직도 아들에게 침을 튀기며 훈계중이다.

신호등이 바뀌자 쏜살같이 액셀을 밟았다. 요리조리 미꾸라지처럼 차들 사이를 빠져나가 다음 신호등 앞에 대기 하고 있으니까.

이번에는 좌측 차선에서 하얀색 소나타가 폴폴 거리며 나타난다.
학생이 나와 눈이 한번 마주치고는 씨익! 웃고는 눈길을 돌렸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헛수고를 반복하고 있는가?
무술도장의 관장님들은 뭐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살수가 없다는 강박관념에 빠져있다.

* 어느 날 느닷없는 실시된 아침등교 : 아침등교 차량운행은 관장님들의 조급함 때문에 생겨난 결과물이다. 그것이 결코 나의 희생을 감수해가며, 도장의 회원들에게 편안한 등굣길을 보장해주기 위해서 실시된 운동은 아닐 것이다.

* 토요일도 일요일도 없는 도장 특별수업 : 집에서 가족들과 여유롭게 보낼 수 없는 것은 경쟁도장에 뒤처지고 있다는 조급증 때문이다. 불규칙한 도장의 업무로 인하여 가장 피해를 많이 보는 이는 관장의 가족들이다.

* 학교체육이나 레크리에이션 : 학부모의 요구도 있겠지만 회원의 이탈을 막기 위한 자구책이다. 없는 일을 만들어서 하고 있지만 회원의 증가나 수련생의 실력증가, 도장의 운영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거 유술관 합기도의 동문(同門)이었던 유술관 총관장이 한 달 전 도장폐업을 했다. 대한합기도협회 심사위원으로 20대에 합기도장을 열어 30년이 되도록 합기도 발전에 공헌했다. 그는 합기도의 기술뿐만 아니라 여러 무술에도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유술관 본관에는 수련생이 170명까지 올라갔었다. 나는 그의 경영노하우를 배워 공권유술 관장에게 소개하고자 하는 열린 마음으로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많았다.

유술관대회가 열리면 참가자가 기본이 800명이었고 그와는 호형호제(呼兄呼弟)이었기 때문에 공권유술 수련생들도 유술관대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렇게 전성기를 구가하던 유술관 총본관의 관원이 어느 날부터 하나둘씩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12명 정도의 수련생들만 남았을 뿐이다. 도장 문을 닫는 순간에도 그는 단한명의 수련생을 위하여 차량운행을 해주었다.

아무리 빨리 달리더라도 신경만 곤두서고, 몸만 피곤할 뿐 결국 결승점에는 똑같이 골인 할 수밖에 없는 정체구간처럼, 우리는 열심히 살고 있지만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 볼 뿐이다.


<글 = 강준 회장 ㅣ 사단법인 대한공권유술협회 ㅣ master@gongkw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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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수고 #강준 #공권유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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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져지 이사범

    항상 깊은 통찰력으로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
    한국의 무도 사범님들이 힘들겠지만 ......힘내십시요!

    2015-03-3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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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그네

    구름은 바람이 불어야 흘러가고 인생은 사랑이 있어야 흘러간다...강회장님의 글을 접하다 보면 각박한 무도인 들어게 풍요로운 사랑을 심어주는 지혜가 보여 행복해 집니다. 항상 자신을 돌아보며 최선을 다하는 무도인들이 많았으면...오늘도 정처없이 세월이 흘러가네...

    2015-03-1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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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응

    좋은 글입니다, 강 회장님. 담아갑니다.

    2015-03-1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글쎄

    공감합니다...
    조급증 때문에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할 토요일과 일요일을 반납한 태권도 지도자님들....
    가정이 무너지고 흔들리니 도장도 흔들리지요...
    가장 불쌍한건 가족들이라고 생각합니다....
    10시 11시가 되어야 들어오는 남편과 아빠를 기다리느라 가족은 지칠대로 지쳐있습니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할까요...

    2015-03-1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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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쎄

    공감합니다...
    조급증 때문에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할 토요일과 일요일을 반납한 태권도 지도자님들....
    가정이 무너지고 흔들리니 도장도 흔들리지요...
    가장 불쌍한건 가족들이라고 생각합니다....
    10시 11시가 되어야 들어오는 남편과 아빠를 기다리느라 가족은 지칠대로 지쳐있습니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할까요...

    2015-03-16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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