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사랑방] 도(道)와 술(術), 그 신화와 전설 사이

  

이정규 사범의 무예사랑방 시즌2 - 도(道)와 술(術)


이정규 사범

소위 태권도의 과학이라는 책을 썼다는 내가 정작 소싯적부터 관심을 가져온 것은 ‘과학’이 아닌 신비한 ‘도술’들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만약 전설로 전해지는 축지, 장풍, 공중부양 등의 초능력을 얻어 하늘을 나르고 바위를 쪼개며 호풍환우(呼風喚雨)하는 능력들을 갖는다면 어떤 무예의 고수와도 당당히 이겨 천하 영웅이 될 테니 말이다.

공중부양(空中浮揚, Levitation)

혈기 방장했던 청년시절 한 기인을 만났다. 산발한 머리에 행색은 남루하기 짝이 없는 데 번뜩이는 안광이며 사통팔달 물 흐르듯 이어지는 학식이 대단했다. 농번기엔 흙을 파다가 한가한 철이 오면 세상구경을 나온다고 했다. 아무튼 허튼 소리를 할 사람은 아닌 듯싶었다.

밤이 맞도록 대화가 깊어지자 문득, “무예를 했다니 하나 묻겠는데 공중부양이라고 들어보았소? 난 보고도 못 믿겠던데?”라며 말을 꺼냈다. 그 분의 죽마고우 하나가 조부께 어릴 적부터 단전호흡을 배웠는데 하루는 공중부양을 보여주겠다며 좌선에 들더니 천천히 떠올라 자기 머리 위를 지나 반대편에 내려앉더라고.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냐고?

선배 관장님 한 분은 중국무예와 태권도 수련에 평생을 바친 분이시다. 산중 토굴에 앉아 참선을 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옆자리가 허전한 감이 들어 눈을 떠 보니 옆 사람이 머리 위에 떠 있더란다. 한참을 올려보다가 “거, 공중에 떠 계시네요?”라고 묻자 “제가요?” 하며 천천히 내려와 앉더라고. 붕 뜨는 기분은 들었지만 정말 공중부양을 했는지 본인은 몰랐다고 했다.

한국에 나가 민족공부와 선도(仙道)를 지도해주시는 스승님을 뵙던 중이었다. 도반 한 분이 질문을 드렸다. 새벽에 깨어 부엌에서 물을 마시는데 갑자기 몸이 붕 뜨는 기분이 들어 발밑을 내려다보니 바닥이 저 아래 있고 두 발은 공중에 떠 있더라는 것이다.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를 여쭈었다.

스승님의 답변은 간단했다. “수행하다 보면 가끔 그런 일이 생기곤 하지. 별 신경 쓸 일 아니니 맘에 두지 말고 그냥 지나가면 되네. 자, 다음 질문......” 이런 현상은 깨우침으로 얻은 도(道)의 힘이 아니라 그저 재주에 불과한 술(術)의 한 현상일 뿐이니 욕심 내지 말고 그냥 지나치라는 가르침이셨다. 질문도 재미있었지만 그런 신기한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시는 답변이 더 흥미로웠다.

세계적인 선승(禪僧)으로 유명했던 조계종의 숭산 스님은 공중부양을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땅은 양기를 띄고 있어 내 몸을 양기로 가득 채우면 극성이 같은 자석끼리 서로를 밀어내듯 밀어 올리는 현상일 뿐.’이라고.

우혈 선생님과 찻잔

나에게 기(氣)수련을 가르쳐주신 우혈 선생님이라고 계신다. 팔순을 바라보시는 연세에도 반듯하신 몸매에 발차기의 스피드, 파워 그리고 유연성 등이 20대 청년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경지를 유지하고 계신 분이다. 하루는 행공(行功)을 마치고 앉아 막 끓인 차를 단아한 찻잔에 따라 주셨다. 잔을 들려다가 너무 뜨거워 얼른 내려놓았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아무렇지 않게 잔을 들고 천천히 차를 드셨다. “왜 차를 들지 않는가?” “너무 뜨겁습니다.” 그러자 이렇게 반문하셨다. “자넨 아직 손에 기운을 보내 찻잔의 열기를 밀어 내줄 모르는구먼?”

선생님이 미국을 방문 하셨을 때 한 피트니스 센터에 들르셨는데 근육질의 서양 덩치들 사이에 하얀 수염을 단아하게 기른 동양 할아버지란 보기만 해도 대조적이었다. 그 중 한 사내에게 다리로 드는 역기를 최대한 많이, 그리고 세 번에 걸쳐 들어 보라고 하셨다. 그가 세 번에 걸쳐 도합 50번을 들자 선생님은 그 자리에 앉아 한 번에 100번을 들고 내려오셨다. 다들 눈이 휘둥그레 질 수밖에. 선생님은 가끔 젊은 제자들과 새끼손가락만으로 팔씨름을 하시곤 하셨는데 아무도 이긴 사람은 없었다. 단전의 기운을 돌려 몸을 쓰는 경지가 대단하시기 때문이다.

한번은 선생님께 기이한 능력을 많이 보인 것으로 유명했던 국선도의 조사인 청운거사에 대해 여쭈었다. “청운거사를 아십니까?” 대답이 재밌었다. “청운(靑雲)이? 잘 알지, 우리 아랫집 살았어!” 청운 거사가 한참 활동할 무렵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커지자 당시 악명 높던 중앙정보부에 강제 연행됐던 적이 있다고 했다. 죄목도 없이 수갑을 채워놓고 취조실에서 마구잡이를 당했다고. “당신이 정말 그런 대단한 힘이 있냐? 있으면 당장 보여 봐라!” 취조관이 윽박지르자 그 자리에서 단박에 수갑을 끊어내 버렸다고.

속보(速步)

돌아가신 내 외조부께선 백두산에서 나무꾼으로 자라셨는데 호랑이 등에도 타보셨다는 분이다. 호랑이는 영물이라 함부로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고 하셨다.

여든이 넘으신 외조부님과 함께 산에 올랐을 때였다. 스무 살 청년이었던 내가 먼저 힘차게 산길을 뛰어 올랐다. 외조부께선 90도로 굽은 허리에 지팡이를 짚고 또박 또박 잔걸음으로 뒤따라 오셨다. 처음엔 내가 한참을 앞섰는데 얼마쯤 지나자 거친 숨을 몰아쉬는 내 곁을 숨 하나 흩으시지 않고 지나셨다. 그 뒤로부턴 아무리 기를 써도 앞에 가시는 외조부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마치 에스컬레이터를 탄 것처럼 조르륵 산을 올라가시는데 마치 산위에서 누군가 보이지 않는 줄로 묶어 당겨주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평지에서도 빠르셨지만 산에만 들어서면 외조부를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었다.

백두산 시절 발 빠른 백두산 사람들이 멀리 있는 도시로 장을 보러 떠나면 이틀 먼저 출발해도 반나절이면 따라잡아 사람들을 놀래 켰다고 할 정도로 속보로 유명한 분이셨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시절엔 눈 덮인 만주벌판을 발로 오가며 중국과 러시아까지 드나들며 비단 장사를 하시기도 했다고.

여든 후반의 연세에 별세하시기 바로 전까지 매일 아침 일찍 호미 하나 들고 집을 나섰다가 해가 지면 배추나 무 한 두 뿌리를 메고 오셨는데 먼저 살던 먼 동네에 가서 두고 온 텃밭을 일구고 오신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거리가 도저히 허리 굽은 노인이 하루에 걸어 다녀올 수 있을 거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외조부께서는 산을 타고 다니셨다. 어떤 산이든 척 보면 산의 맥이 보이는데 그 맥을 짚고 가면 쉽게 다닐 수 있다고 하셨다.

게다가 택시만 타시면 거친 함경도 사투리로 길을 훈수하시곤 하셨다. “기사 양반, 이 길로 가면 안 돼. 길 막혔어!” “어르신 걱정 마십쇼, 제가 길은 잘 압니다.”하고 가면 어김없이 공사 중이나 사고로 길이 막혀 있기 일 수였다. 깜짝 놀란 운전사가 어떻게 아셨냐고 여쭈면 “그냥 보면 안다!”가 돌아오는 답이었다. 아마도 오랜 세월 산을 타고, 들을 건너며 지세(地勢)를 보는 안목이 남달리 발달하셨나 보다.

도와 도술의 실체?


딱딱하고 사실적인 수학문제보다는 상상력이 풍부하게 가미된 판타지 영화가 더 재미있듯이 무예수련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근육을 단련해서 갈 수 있는 경지보다는 심후한 내공을 갖출 수 있다는 전설적인 수련에 구미가 더 당기기 마련이다.

혈기왕성한 무인(武人)들 중엔 피 끓는 기운을 주체 못해 미친 듯이 수련에 매달리다가 마침내 산으로 숨어드는 경우가 여럿 있었다. 혹한의 수련 속에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은둔 고수가 되고 싶은 까닭이다. 하지만 산에서 아무리 나무를 치고 바위를 넘어본들 생채기만 늘어날 뿐 바라던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때가 되면 누구나 육체의 한계를 극복할 새로운 길을 찾게 된다. 즉, 몸이라는 단계에서 정신이라는 단계로 그 방향을 전환한다. 육체는 한계가 있지만 정신의 경계는 무한하기 때문이다.

이런 정신의 단계로 방향을 틀고 가다 보면 몸과 마음을 닦아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상의 경지인 “도(道)”와 도를 득하고 나면 얻는다는 초능력 도술(道術)들에 대해 듣게 된다. 그렇다면 이 도술이 갖는 초능력의 실제는 무엇인가? 산중 어딘가에 아직도 자취가 남아 면면히 맥을 이어오고 있는 무예의 비기(秘技)인가? 아니면 전설 속의 허구인가? 만약 그런 능력들이 실재한다면 어떠한 수련을 거쳐야 그런 신비한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것일까?

더 높은 수행의 경지, 최강의 경지를 개척해 나가려는 무인(武人)이라면 당연히 이런 신비한 능력들에 관심이 갈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갖춘 이성적인 논리와 지식들을 기반으로 옳은 것은 받아내고 그른 것은 분별하여 내는 현명한 판단력이 없다면 일생을 헛되이 산중에서 소모하거나 허황된 도술을 찾아 헤매 도는 우를 범할 수도 있음이다.

이제부터 제시하는 장풍, 의공(義功), 어검술(御劍術), 투시(透視)등의 도술 이야기들은 지난 세월 우연한 기회에 만난 선배 무인들의 기이한 체험담과 불가의 참선(參禪)수행, 도가의 선(仙) 수행 등을 나름 공부하면서 깨닫게 된 사실들을 토대로 한 것이다. 이것들을 단서로 간략하게나마 도(道)와 도술(道術)의 실체를 밝혀 그 오해와 진실을 밝혀 보고자 한다.

- 다음 편에 계속 -

[글 = 이정규 사범 ㅣ Lee’s 태권도교육센터ㅣmasterjunglee@gmail.com]

<ⓒ무카스미디어 / http://www.mooka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공중부양 #이정규 #도술 #축지법

댓글 작성하기

자동글 방지를 위해 체크해주세요.
  • 로건

    새끼손가락으로 성인남자를 어케 팔씨름을 이겨 세계챔피언도 불가능한데;;

    2017-01-1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Jay

    사실인듯 사실이 아닌듯 진실인듯 진실이 아닌듯 참 재미있게 표현을 잘 하셨네요.
    작가의 창작과 넓은 지식, 앞으로 펼쳐질 얘기들이 참으로 궁금해지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2015-03-0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master seo

    thank you so much for all the storys and about taekwondo life. we all need edu. more martial arts.

    2015-03-0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감사

    실체는 없는거죠? 저는 가끔 꿈에서 공중부양 많이 합니다.

    2015-02-2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궁금

    사범님, 궁금한 건 하실 수 있는 도술이 있으십니까? 혹시나 궁금합니다.

    2015-02-2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
  • 김사

    도와 술, 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다음 편도 기대가 금새 기대됩니다.

    2015-02-2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