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태권도 현대사와 제2도약을 위해 (최종회)

  


우리 무예 태권도는 삼국시대부터 활발히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시대의 환도성(丸都城), 무용총(無踊塚) 고분 벽화에서 태권도 겨루기 사세가 묘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도 ‘무예도보통지’등 역사적 유물이 있으며 일제 치하 36년 동안에는 우리민족 문화 말살정책으로 태권도가 일본 가라데로 변신 지하에 묻혀 오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우리 태권도를 되찾게 된 것이다.

해방 후 태권도계는, 당수도청도관, 조선연무지도관, 당수도무덕관, YMCA권법창무관, 개성송무관 등 5개 기간도장이 탄생 하였고, 그 후 기간도장에서 파생된 오도관, 정도관, 강덕원, 한무관, 관리관 등의 많은 분파 관들이 우후죽순처럼 탄생하였다.

1962년 6월 28일 대한체육회에 대한태수도 협회의 명칭으로 태권도가 정식종목으로 경기를 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각 유파의 통합이 절실함을 인식, 태권도 관(館) 창설지도자들의 헌신적 노력으로 태권도 통합을 이루게 된 것이다. 당시 명칭도 공수도, 당수도, 권법, 수박도, 태수도, 태권도 등이었으나 명칭 재정위원회를 통해 태권도로 통일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1971년 당시 태권도를 이끌어온 핵심 주역이었던 엄운규, 이종우 관장은 태권도 통합을 주도했다. 이들은 세계화 도약을 위한 지도자를 물색하던 중 국제적 감각이 있고, 외국어에 능숙한 외교관 김운용씨를 7대 대한태권도 협회장으로 영입하게 된 것이다. 이로부터 태권도의 국제화 도약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김운용씨가 국제적 활동을 전개하는 동안 엄운규씨는 부회장으로써 태권도 안살림을 잘 이끌어온 지장이였다고 한다. 김운용씨는 회장취임과 동시에 그동안 흐려졌던 태권도 사업을 통합시키고 태권도 구심점을 세우기 위해 첫째, 전당 건립을 내세웠다. 대통령 경호실 보좌관이 이었던 그는 71년 정부의 지원을 얻어 대지 3천 500여 평, 3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현 국기원을 이듬해 11월 30일 완공했다.

둘째는 태권도 세계화를 위한 기반 구축이었다. 무도 태권도만으로는 대중 속에 쉽게 파고들 수 없다고 판단, 태권도를 국제 스포츠화 시켜 국제스포츠로 병행해 나가야 된다는 여론에 따라 73년 5월 28일 국기원 전당에서 세계태권도연맹(WTF) 경기연맹을 창설. 제1회와 2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를 개최 17개국 35명의 태권도지도자로 대표를 구성 국가지부로 창설 김운용씨를 만장일치로 WTF총재로 선임됐다.

셋째는 태권도를 범국가적 지원을 합법적으로 받아야 된다는 것이다. 협회의 계속된 건의에 따라 정부는 국민체력향상과 체육인구 저변확대에 태권도를 국기로써 보급토록 초, 중, 고 대학에 체육의 과정으로 채택됐다. 60만 국군이 태권도를 의무적으로 수련토록 국방훈령 제 95호를 발령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군은 월남전에서 태권도 수련을 통한 강군으로 인정 세계인이 관심사가 되기도 했다.

이와 같이 태권도는 국내기반위에서 국제무도로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1975년 10월 8일 국제경기연맹 총연합회(GAISF)에 세계태권도연맹(WTF)이 가맹을 시작으로 1976년 국제군인체육회(CISM)에서 태권도가 세계군인체육대회에 정식종목이 된 것이다. 그러나 태권도가 국제스포츠로써 활동하기 위해선 국제올림픽 위원회(IOC)의 승인을 받는 일이었다. 가라데 계열과 타 무술들의 방해를 극복하고 1980년 7월 17일 모스크바 IOC 제83차 총회에서 태권도가 IOC 승인을 받았다.

그 후 1985년 6월 5일 베를린에서 개최된 IOC 제 90차 총회에서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시범경기종목으로 채택됐다. 1986년 세계대학체육연맹(FISU)에 가입, 대학 스포츠제전에서도 태권도가 정식종목이 되었다. 1989년 4월 26일 IOC 집행위원회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서울에 이어 시범종목으로 채택됐다. 이와 같이 대부분의 국제스포츠 제전에 태권도가 공인종목으로 채택되었으나 마지막 관문은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이었다. 여기에는 일본 가라데, 중국 우슈, 북한이 주도한 국제태권도연맹(ITF) 등이 계속해서 방해가 있었으나 1994년 9월 5일 파리 열린 ‘제103차 IOC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태권도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통과되었다.

이는 88서울올림픽 개최에 이은 한국 스포츠의 쾌거로 국제무대를 향안 도약의 발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로써 태권도는 행방과 더불어 본격적인 중흥기를 맞게 된 것이다. 태권도가 세계인이 좋아하는 무도(武道)로 정착되고 올림픽에서 영구적으로 남기 위해선 태권도인 들은 새로운 각오로 다져 나가야 된다.

이를 위해 첫째, 태권도인 들의 단합이다. 해방 후 피와 땀으로 이룩한 태권도 공든 탑이 무너지지 않도록 집단이기주의나 태권도 전체에 누가되는 행동은 삼가야 되며 모두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

둘째, 72년에 건립된 현 국기원은 오늘의 세계전당으로써 미흡하다. 근대화된 태권도 종합전당 건립, 그에 따른 부대시설들은 서울 근교에 신설하여 세계태권도인 들이 종주국을 찾도록 유도해야 된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을 당당히 대할 수 있는 주인 의식을 갖고 행동해야 된다.

셋째, 각종 태권도 사업내실화를 기해야 된다. 그동안 닦아놓은 기반위에 새롭게 그림을 그려 나가는데 힘을 모아야 된다. 무도태권도와 스포츠태권도의 합리적 운영 지도사범양성의 질적 향상, 승단심사제도, 개선보완으로 단의 권위향상과 국제적 표준화, 태권도 기술향상, 태권도 정신교육 등을 각 종목전문위원회를 구성 능동적으로 추진해나가야 된다.

넷째, 태권도를 올림픽에서 계속 정식종목으로 되어있는 것은 우리 문화를 지구촌 68억여 명의 인구에게 쉽게 홍보할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스포츠외교 강화, 경기 룰을 흥미 있고 박진감 넘치도록 개선해야 되며 심판판정이 긍정해지도록 모든 주치와 지혜를 동원해야 된다.

다섯째, 태권도 기구조직을 국제적 수준에 맞게 개편해야 된다. 6개 대륙 192개 회원국과 8천 여명의 세계태권도 인구를 관리할 수 있는 업무체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야 된다.

여섯째, 태권도 발전에 저해되는 요소들을 과감히 색출 제거해 나가도록 태권도 정화를 위한 대책위원회를 4개 단체에서 선발 강도 있게 운영해 나가야 된다.

* 외부 기고문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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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권도인

    상업적 마인드와 자본주의 생리만 따르는 도장경영 강조가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태권도 발전을 제안한 글인 것 같습니다.

    2011-04-2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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