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KAS IN USA] 작은 거인 신재균의 마이웨이
발행일자 : 2010-08-20 14:28:18
<무카스 = 미국 포틀랜드 / 정대길 기자>


오레곤주 멀트노마 폭포 앞에서 신재균.
네팔 최초의 올림픽 메달을 조각한 ‘네팔 태권도의 아버지’ 신재균. 1988년 미국 오레곤주 포틀랜드에 정착한 그는 현재 미국서부해안태권도협회(USWC)를 조직, 26개의 회원 도장을 이끌고 있다. 지금의 신재균이 있기까지 과정을 아는 이들은 그를 두고 ‘바닥을 아는 사범’, ‘작은 거인’이라고 부른다. 2일 포틀랜드 현지에서 그를 만나 태권도 여적과 미국에서 도장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노하우를 들어봤다.- 네팔에서의 시작은?
“1982년도에 네팔 땅을 밟았습니다. 한국과 국교 수교도 맺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달랑 도복 한 벌을 들고 네팔행 비행기에 올랐죠. 당시 네팔에서는 태권도를 교육할 수 있는 환경이 전혀 조성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네팔 왕실에서는 국민들에게 마샬아츠 교육을 금지하고 있었습니다. 스포츠로 보지 않았죠. 왕실을 상대로 설득에 나섰습니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정식종목을 앞두고 있는 스포츠라고 주장했습니다. 가까스로 네팔 정부로부터 태권도 교육을 허가 받았습니다. 이제 무언가 결과물을 내야했죠. 네팔 체육계와 국민적 숙원이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하는 것이었습니다.”
- 당신을 ‘네팔 태권도의 개척자’라고 말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1988년 아시안게임에서 4개의 메달을 획득했습니다. 그 전까지 네팔 정부 차원에서 축구, 수영, 유도, 역도, 복싱 등에서 내노라하는 코치들을 영입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죠. 국제적인 경기가 열릴 때마다 국민들의 관심과 기대가 상당했죠. 메달 획득은 국민들의 염원이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거둔 낭보였기에 거의 네팔 전역이 축제의 분위기 였습니다.”
1988년 올림픽에서 신 사범의 제자인 비란 라마(남)가 동메달을 획득했다. 네팔 체육 역사상 첫 번째 올림픽 메달 획득의 중심에 신재균이 있었다. 네팔이 국제 스포츠 경기에 출전한지 35년만의 쾌거였다. 그는 네팔을 떠나기 직전까지 총 40,000여명의 태권도 유단자를 배출하며 네팔 체육계의 역사를 새로 썼다.

벽돌 격파 시범 중인 신재균 사범
- 이렇게 네팔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던 당신이 돌연 미국행을 택했습니다.“6년간 네팔에서 태권도를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체류 환경이 문제였죠. 신분이 불안정했습니다. 해외 태권도 사범을 결심하기 전 미국에서의 회사 생활이 자꾸 떠오르더군요. 영어회화는 대학 다닐 때 어느 정도 학습이 되어 있었고, 홍콩과 미국 등지의 외국계 회사를 다녔기 때문에 부담은 덜했죠. 그래서 선택한 미국행이었습니다. 미국에 오면 꿈이 이뤄질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또 다시 신분이 문제가 되더군요. 영주권이 해결이 안됐습니다. 추방을 당했죠. 그후 어렵게 재입국에 성공했습니다. 웃긴게 외국계 회사를 아무리 다녀도 나오지 않는 영주권이 태권도 사범을 하면서는 나왔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태권도 사범을 시작한지 두달 만의 일이죠. 미국에서의 순조로운 출발이 시작된 것이죠.”
1998년 10월 'J. K SHIN'의 미국 도전은 그렇게 시작됐다. 정착 초기 청소부, 공사장 잡부를 전전하며 몸으로 미국을 받아들였던 그다. 삶의 현장에서 체득한 살아이쓴 미국 문화를 이해한 뒤, 여러 회사 생활에서 얻은 비즈니스 마인드를 접목시켰다. 오레곤주 포틀랜드 지역 내에만 26개의 회원도장을 만들어 내기까지 그는 하나의 협회 아래 본인이 개발한 신개념 도장 운영 시스템을 도입했다.
- 미국에서 도장 개관, 가장 중시한 것은 무엇인가?
“미국 사회에 들어가 보지 않고서는 도장으로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미국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죠. 구체적인 시장 분석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개관을 하려는 도장 인근의 소득 수준도 중요합니다. 상위권, 중위권별로 접근 방법과 교육 시스템이 달라지는 것이죠. 가령 이 동네는 인구, 성인, 아이들, 부녀자들의 구성 비율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알아봐야 합니다. 이런 치밀한 사전 분석을 통해 도장을 개관하기 때문에 실수와 실패가 적어지는 것입니다.”
- 남다른 노하우가 있다면
“중요한 건 사범입니다. 성실하고 인내심 강한 사범을 얼마만큼 보유하고 있느냐가 성공의 핵심입니다. 이들 사범을 교육시키는데 적게는 6개월에서 8개월 정도의 기간이 소요됩니다. 협회의 시스템에 맞게 교육된 사범이 현장에 투입되기까지는 철저히 ‘우리화’되어야하는 것입니다. 가장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사범의 인성입니다. 다른 하나는 어떻게 보면 작은 것인데요. 오는 학부모를 절대 놓치지 않는다는 것이죠. 일종의 화술이아고 할까요. 이 역시 실전처럼 교육시킵니다. 사범이 도장 경영의 흥망을 좌지우지 한다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아울러 인터넷을 통해 세계 각국에서 검증된 실력을 가진 태권도인들이 USWC에 지원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합니다. 고급 인력을 관리하는 것이죠.”
신재균 사범은 현역이다. 그를 만난 미국에서의 인터뷰 장소 역시 도장이었다. “로우 블락, 턴, 아웃사이드 미들 블락, 턴”을 외치며 땀 흘리는 그는 “죽기 전까지 은퇴는 않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사범이라는 직업을 통해 부와 명예를 얻었으니 이를 보답하기 위해서는 끝까지 필드에서 지도하는 것이 보답하는 길이라는 그다.

시연 중인 신재균(오른쪽) 사범
- 신재균 사범이 종주국 태권도에 던지는 질문“2050년 국가별 평가 보고서(골드만삭스)에 따르면 한국이 제2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다고 합니다. 현재 그리고 미래의 한국 국가브랜드가 어느 정도의 평가를 받는지 또 받게 될지 대략 짐작할 수 있죠. 여기서 한번 생각해보죠. 우리나라가 여기까지 오는데 태권도는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준외교 사절로서 한국의 글로벌화를 선두에서 이끌었죠. 태권도는 대한민국이 보존 발전시켜야할 소중한 보물이란 것입니다. 태권도의 ‘절대적 가치’를 우리는 또 국가는 알아야합니다.”
- 남은 이루고 싶은 꿈은?
“네팔 오지를 가면 하루에 물 한 동이를 얻기 위해서 두세 시간씩 산골짜기를 오고가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루를 감자로 때우곤 하죠. 그들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당장의 1달러가 절실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입니다. 아이들을 하루 먹고 살게 하는 것이 아닌 평생을 먹고 살 수 있게 할 교육의 장소인 학교를 짓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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