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철의 복싱 인사이드 19] 격투기에 문호를 개방하자

  

격투기를 배제하는 국내 프로복싱


국내 프로복싱을 관장하는 사단법인 한국권투위원회(KBC)는 현재 격투기와의 교류를 배제하고 있다. 격투기 선수가 KBC에 등록된 체육관 소속으로 시합에 출전하기 위해 라이센스를 신청할 경우 발급은 해주고 있지만, KBC 라이센스를 소지한 상태에서 기타 격투기 경기에 출전하면 자동으로 라이센스를 박탈한다. 때문에 일부 격투기 선수들이 복싱경기에 출전하기는 해도 복서로 데뷔한 이후 다시 격투기 시합에 출전하면 사실상 프로복서의 생명은 끝나는 것이 관례처럼 굳어졌다.

KBC 경기규칙 11조의 '타 프로스포츠 라이센스 겸용 금지' 조항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1. 다른 프로스포츠에 관여하거나 종사하는 자는 KBC에 의한 특별한 허가가 없는 한, 라이센스를 교부 받을 수 없다. 2. 라이센스 소지자는 KBC의 특별한 허가가 없는 한, 다른 프로스포츠에 관여하거나 종사할 수 없다’

국내 프로복싱은 사상 최악의 선수 기근에 시달리는 상황에서도 위 조항을 고수해 왔다. 격투기의 선수층 역시 팬들에게 홍보된 것만큼 두껍지는 못하다 할지라도 격투기 시장은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며 국내에서 상당한 인프라를 구축했다.

정통성, 전통, 국제적인 추세 등을 비추어 볼 때 세계적으로 프로복싱이 격투기보다 한 차원 높은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만큼은 유독 복싱보다 격투기의 인기가 높은 이상기류가 이미 정착된 상태다. 인터넷 포탈사이트에서도 격투기 관련 뉴스는 쉴 새 없이 올라오는 반면 복싱 뉴스는 격투기 뉴스의 일부로 가끔 다뤄지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권투계 내에서 주장하는 "복싱의 수준은 격투기와 차원이 다르다", "격투기는 국내에서만 인기가 있을 뿐이다"는 식의 변명은 현 상황에서 쓸모없는 탄식일 뿐이다.

프로복싱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그 어떤 노력이라도 기울여야 한다. 격투기에 대해서 철저하게 배제로 일관하기보다는 그들의 인프라를 흡수하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복싱에 접목시키는 것도 프로복싱 활성화를 위한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격투기 선수층과 팬 층의 공유를 위한 노력이 필요


격투기는 프로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홍보마케팅에서 일차적인 성공을 거뒀다. 국제무대에서는 여전히 관심권 밖의 마이너 종목이지만 국내에서는 거품으로 인한 향후의 흐름이 걱정될 정도로 격투기는 좋은 입지를 만들어냈다. 복싱계도 이제 변화해야 한다. 과거의 영화만을 생각하고 폐쇄적으로 전통만을 고집해서는 발전의 속도가 더뎌질 수밖에 없다. 아니, 어쩌면 더 이상의 발전이 없을지도 모르는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다. 격투기 팬들은 잠재적인 복싱팬들이고, 그들에게 알려진 격투기 선수들이 복싱과 격투기를 오가며 시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면 선수와 팬을 모두 확보할 수 있다. 제도적인 뒷받침만 충분히 된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우선 격투기 선수들이 복서로 전향해서 시합할 경우 언론의 주목을 끌어내고 복싱팬뿐 아닌 격투기 팬들의 관심을 유발할 수 있다. 그리고 가뜩이나 얇아진 선수층과 선수들의 실력 격차가 유난히 큰 현 복싱시장에서 격투기 선수들은 빠른 시간 안에 복싱의 유망주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높다.

스타가 배출되어야 팬들의 관심을 받고, 그 스타가 롤 모델이 되어 제 2, 제 3의 스타를 기대할 수 있다고 보면 유망 격투기 선수들은 복싱계에도 좋은 자원이며 격투기 선수들에게도 또 다른 기회가 제공될 수 있다. 또한 교류를 통해 격투기의 프로모팅을 배우고 흡수해야 한다. 화려한 경기장과 선수의 홍보, 유료관중의 모객 및 복싱보다 월등히 앞선 마케팅은 현재의 프로복싱에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다. 옛 것이 되어버린 과거의 흥행방식을 고집하는 한 달라진 팬들의 눈높이를 맞추기는 더욱 어렵다. 지금 세대들의 입맛에 맞는 밥상을 차려놓는 격투기의 흥행을 가까이에서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문호가 개방되면 자연히 큰 대회를 개최하는 격투기 흥행사들도 복싱의 흥행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고 이들의 영입 및 이들과의 경쟁은 프로복싱 발전에 촉매제로 작용될 수 있다.

왼쪽부터 한국랭킹 1위 김판수, 코리안콘텐더 라이트급 1위 김동혁, 한국챔피언 오두석

10년 후를 준비해야 한다


1960년대 김기수가 나온 이후 1970년대에 홍수환과 유제두가 나왔고, 홍수환과 유제두를 보고 꿈을 키운 복서들은 1980년대의 한국 복싱을 수놓았다. 최용수, 최요삼, 지인진 같은 실력파 챔피언들도 1980년대의 장정구, 유명우 등을 보면서 희망을 품었었다. 복싱을 통하여 부와 명예를 거머쥐는 스타가 등장하면 5년, 10년 후에는 반드시 유망 선수들이 꼬리를 물고 배출된다. 유망 격투기 선수가 복싱으로 전향한다고 해서 반드시 챔피언이 되고 스타가 되리란 보장은 없다. 다만 팬들의 주목을 끄는 선수들이 자주 시합을 갖게 된다면 언론에서도 그만큼 관심을 가질 것이고 현역 복서들에게도 훈련에 더욱 집중하는 자극제가 될 수 있다. 라이벌의 출현과 언론의 주목, 팬의 관심은 선수들의 기량 향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는 선수들의 수입과도 직결된다.

격투기 선수였던 오두석(프라임)은 프로데뷔 후 3연속 1R KO승이라는 기염을 토하고 3전만에 한국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방승환(숭민)은 2008년 11월 코리안 콘텐더 미들급에 출전하면서 각종 매체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격투기 챔피언 출신의 김동혁(제주맥스) 역시 콘텐더 라이트급에서 우승한 바 있다. 한국 라이트급 1위에 랭크된 김판수(신도)도 격투기 유망주에서 복싱의 기대주로 탈바꿈했다. 유우성(신도) 등 굵직한 격투기 선수들이 복싱으로 전향할 때 이들은 기존 선수들보다 훨씬 많은 스포트라이트의 주인공이 되었었다.

이들 중 김판수와 김동혁을 제외한 대부분은 라이센스 발급 후 격투기 시합 출전으로 자격이 상실되어 규정상 다시 KBC가 주관하는 경기에 출전할 수 없는 상태다. 이들이 지속적으로 격투기와 복싱을 병행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 또한 생활고에 시달리는 복서들도 격투기에 자유롭게 진출할 수 있도록 족쇄를 풀어야 한다. 복싱에 전념할 것인지, 격투기에 전념할 것인지, 병행하는 것이 효율적인지는 선수와 매니저의 자유의지에 맡길 일이다.

프로복싱과 격투기는 라이벌이 아닌 동반자의 관계다. 선수와 팬을 공유하면서 프로야구, 축구, 농구 등에 집중되어 있는 인기를 가져오도록 함께 노력해야 발전할 수 있다. 격투기에 문호를 개방할 경우 그토록 기다리는 스타의 탄생과 프로복싱의 재도약이 좀 더 앞당겨질 수 있지 않을까?

무카스의 황현철 복싱 전문위원이 2010년 2월 6일자로 한국권투위원회로부터 홍보이사로 위촉을 받았습니다. 금주는 설 특집에 맞춰 연재했으며, 차주부터 격주 수요일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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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쎄요

    한국 복싱과 함께 생활하고 현주소가 어디있는지 가장 많은 고민을 하는 사람의 글을 밖에서 단순히 전통과 이상만으로 판단하는것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글쓴분의 복싱에 대한 사랑과 그 정통성을 위해 온몸으로 애써온 모습을 본다면, 한국 복싱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다시 부흥시키려는 고민과 노력을 우리는 이해하고 함께 힘을 실어줘야합니다. 적어도 복싱의 정통성에 대한 긍지가 있는 분이라면, 더욱 합력해야하는 것입니다.

    2011-03-14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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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혁

    시대에 발 마추어 성장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것 보다 한 걸음씩
    선수들과 복싱에 대해 항상 발전할 수 있는 긍정적인 내용을 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2010-02-22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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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로스카운터

    홍보이사란 이분 그냥 말만 앞선. 전문가인가 봅니다.
    현 복싱체육관을 운영하시는 관장님들은 전혀 신경안쓴 권투위홍보이산가 봅니다.
    흥행을 목적으로 과감하게 나아가야 한다는 것 인정합니다.
    하지만 글쓴분이 지칭한 방승환선수는 권투조금하다가 다시 격투기로 U턴 했습니다.
    그냥 한번 경험 하다가 다시 격투기로 돌아가는..권투가 잠시 쉬어가는 놀이터로 전락한 기분입니다. 권투위 홍보이사란 분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2010-02-2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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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서

    프로복싱 말하는거죠. 아마추어 아니고

    2010-02-1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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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민철.킥복싱전랭킹1위.

    복싱이나.태권도둘다.올림픽종목이다.오히려.무술이라는태권도는.격투기에.문호를.개방할수있는가.특히.올림픽태권도를.복싱도마찬가지다.기자가.완전.아마추어.생각보다.하수란점이.놀랍다..그러고도.이런기사를.올리고.월급받다니..

    2010-02-1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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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민철.킥복싱전랭킹1위.

    복시이왜격투기에문호를개방안하는지모른다면.기자.자격이.없다.그럼왜태권도는.격투기에.문호를.개방안하는가.올림픽태권도시스템을격투기에.문호를.개방할수있나..복싱도마찬가지다.

    2010-02-17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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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근

    글로발 시대에 마춰야징........

    2010-02-1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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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근

    글로발 시대에 마춰야징........

    2010-02-15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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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 진짜 잘쓴다

    과연 전문위원 다우시네요, 멀리 미국에서 황 위원님글 애독하고 있습니다. 감사요 꾸벅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2010-02-13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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