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아는 지혜는 내맘 속에 있으며, 지자기(知自己)함이 깨달음의 시작이다

  


한의학의 고전인 황제내경(黃帝內經)에 "가까운 것을 빌어 먼 것을 얘기하고, 안을 터득해서 바깥을 이야기한다. 몸 가까운 일을 충분히 장악하고 있으면 신변에서 먼 일까지 반드시 추리할 수 있다."라고 했다.

한국 불교의 주요 맥락인 선종에서는 면벽수도하여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순간적 깨달음을 중시한다. 표현이야 순간적 깨달음이지만,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교종의 깨달음 방법과 비교하여 말이 순간적이지 깨달음까지의 시간은 언제까지라 할 수 없을 정도로 길 수도 있다.

이런 선종적 깨달음도 결국은 벽에 비추인 자신의 모습을 반조하고 내 맘 속에 있는 스승 없는 지혜에 답을 구하라는 뜻이다.

어떤 원서가 있고 해석서가 있다 하면, 원작자 자체의 의도는 원서에 나타나지만, 해석한 이의 이해도에 따라 언어의 본질이 차이가 나고, 그 책을 접하는 모든 이도 원작자의 의도보다는 해석자의 의도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이런 곡해가 한 세대에 머물면 교정이 가능하지만, 여러 세대를 넘어간다면, 교정이 불가능해진다.

태권도 교육의 여러 프로그램 중에 이런 무사지(無師智)의 정신도 가르쳤으면 한다. 어떤 조직에서 모든 소프트를 몇몇의 기획자로 하여금 만들어 내는 것보다는 그 조직에 속해있는 불특정 다수로 하여금 만들어 내도록 하는 것이 훨씬 비소모적이고, 객관성을 견지할 수 있으며, 상품성도 있다고 본다.

올바른 스승은 제자에게 자신을 닮으라 하지 않고, 길만 제시해 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혼자가야 할 길이라면, 목적지도 일러주지 않은 채 죽어버리면, 뒤에 선 이는 어디로 가란 말인가?.

항상 게을러 질 때마다 맘에 새기는 글로 마지막을 대신한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간직한 자는 그의 그런 마음을 채찍질해야만 하는 것이다. 마음 속의 밝고 어두움이 비록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 같지만 이를 채찍질하는 자는 많고 이를 채찍질하지 않는 자는 탁한 것이다.

말이 소보다 훨씬 민첩한 것은 말의 채찍질하는 마음이 소의 그것보다 훨씬 더하기 때문이며, 매의 기세가 올빼미의 기세보다 사나운 것은 매의 채찍질하는 마음이 올빼미의 그것보다 훨씬 더하기 때문이다. 마음의 맑고 탁함과 바램의 강약이 짐승이나 새들에 있어서도 이치로 따지자면 이와 같거늘 하물며 사람에게 있어서랴.

자신의 꿈에 대해서 채찍질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차이는 나중에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벌어져 버리는데 자신의 성취라는 것이 태어나면서 문득 얻어지거나 멍청히 시간만 보낸다고 저절로 얻어지겠는가!!!!!."

存其心者責其心也 心體之明暗 雖若自然而責之者淸 不責者濁 馬之心覺 於牛者 馬之責心 於牛也 鷹之氣勢猛於 者 鷹之責氣猛於 也 心體之淸濁 氣宇之强弱 在於牛馬 鷹者 以理推之而猶然 況於人乎 或相倍 或相千萬者 豈其生而輒得茫 然不思 居然自至而然哉
---東武 李濟馬의 東醫壽世保元 중 性命論에서

#지자기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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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승동

    2001-03-28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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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승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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