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시절]국제합기도연맹 첫 세계대회, 2,500명 ‘북적’

  

6개국 60명 참가가 고작, 프로그램 개발로 해외 참가자 늘어


1990년 열린 국제합기도연맹 세계대회 모습


국제합기도연맹은 1990년 4월 1일을 잊을 수 없다. 이 날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제1회 국제합기도대회를 개최했기 때문이다. 참가 수만 놓고 보면 대회는 성공적이었다. 참가 선수만 1,000여명이 넘었다. 여기에 관계자 400여명과 1,000여명의 관중이 자리를 메우며 장충체육관은 북새통을 이뤘다.

1990년대 이전 합기도인들은 대회에 목말라 있었다. 이즈음을 시작으로 국내에서는 합기도가 부흥하기 시작했다. 많은 무도인들이 합기도를 수련했다. 하지만 점점 불어나는 합기도인에 비해 대회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를 알고 故 명재남 국사는 합기도의 발전과 해외 보급을 위해 국제대회를 개최한다. 이 대회가 바로 제1회 국제합기도대회다.

하지만 이름만 세계대회였다. 제1회 대회는 1,000여명이 참가했지만, 해외 참가자는 6개국 60여명에 불과했다. 국내 참가자로 인해 대회는 성황리에 마쳤지만 故 명재남 국사는 만족하지 못했다. 이후 그는 해외보급을 위해 영국, 핀란드, 칠레 등을 돌며 해외교육을 실시했다. 하지만 부족했다. 4년 뒤에 개최한 2회 대회도 해외참가자 수가 크게 늘지 않았다.

이후 故 명재남 국사는 용인무도관을 이용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합기도와 한기도 지도를 지도함은 물론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지금 많은 체육계캠프에서 실시하고 있는 온돌방, 민속 놀이체험 등의 문화관광도 실시했다. 가격은 30불, 선진국에 한해서만 적용됐다. 저개발 국가에서 참가하는 수련생들에게는 교육비를 받지 않았다. 선진국에서 지불한 수련비로 이들을 감당했다. 하지만 저개발국 수련생이 부지기수로 늘어나며 명 국사는 사비를 들여 그들을 수련시키기도 했다. 심지어 국내 수련생은 자신이 먹을 쌀만 가지고 와서 수련을 하기도 했다.

이런 故 명재남 국사의 노력은 결실을 맺는다. 1997년 열린 3회 대회부터 해외참가자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4년에 한 번 개최되던 대회도 해외 참가자들의 요청으로 3년으로 줄였다. 하지만 해외 참가자들의 아우성은 끊이지 않았다. 국제대회기간이 너무 길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국제합기도연맹은 3년에 두 번 국제대회를 피해 코리아오픈H.K.D(합기도 & 한기도)대회를 개최하게 된다.

현재 국제합기도연맹의 국제대회에는 꾸준히 해외 참가자가 늘고 있다. 지난 2007년 열린 국제H.K.D대회에는 20여국 200여명의 해외 수련생이 참가했다. 더불어 용인무도관에도 매년 10여개국 100여명이 수련 프로그램에 참가한다.

[김성량 기자 / sung@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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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KD

    난 최근 합기도 소식인줄 알았네......쩝!!!!

    2009-08-20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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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효인무술관

    와우~저 대회때 사범으로 출전자들을 이끌고 갔었습니다...등에 번호 붙여 주느라고 옷핀찾으러 동분서주했던 기억이 나네요~국사님 시범또한 넋놓고 보았던 기억이 아직 생생합니다...지금도 국제연맹소속으로 체육관운영중이지만 저 대회때의 경험이 지금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국제연맹 파이팅~~

    2009-08-1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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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환

    아버지와함께손잡고..저대회를 보러갔던 기억이 나네요 ^^
    기념패와 시범사진들도 가지고 있는데..^^
    국제연맹소속은 아니지만 정말 좋은기사보고갑니다. ^^!

    2009-08-19 00:00:00 수정 삭제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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